
누군가의 일기장에서 끔찍한 범죄의 고백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그 내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 일기를 쓴 사람이 유명한 소설가라면 어떨까. 읽고 있는 글이 실제로 벌어진 일을 기록한 것인지,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2026년 10월 22일 국내 개봉한 영화 베러티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심리 스릴러다.
콜린 후버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마이클 쇼월터 감독이 연출했다. 앤 해서웨이가 유명 소설가 베러티 크로퍼드를, 다코타 존슨이 대필 작가 로웬 애슐리를, 조시 하트넷이 베러티의 남편 제러미를 연기한다.
영화는 한 저택에서 발견된 수상한 원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원고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까지 의심하게 된다.
단순히 범인의 정체를 맞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결말에서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작품의 진짜 미스터리는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가보다 우리가 왜 특정 인물의 말을 믿고 싶어 하는가에 가깝기 때문이다.
※ 아래 내용에는 영화 베러티의 주요 사건과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1. 베러티 줄거리, 저택에서 발견된 수상한 원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무명 작가 로웬 애슐리가 있다.
로웬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까지 겪은 그는 작가로서도, 한 개인으로서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런 로웬에게 뜻밖의 제안이 찾아온다.
베스트셀러 작가 베러티 크로퍼드가 사고로 집필 활동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으니, 그의 인기 소설 시리즈를 대신 완성해 달라는 것이다.
로웬에게는 놓치기 어려운 기회다. 무명 작가가 유명 작가의 작품을 이어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이지만,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안을 수락하고 베러티의 자료를 살펴보기 위해 크로퍼드 가족의 저택으로 향한다.
저택에서 로웬을 맞이하는 사람은 베러티의 남편 제러미다. 그는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을 견디면서도 차분하고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반면 베러티는 교통사고 이후 말하거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 로웬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베러티의 집필 자료를 정리하고 기존 작품의 흐름을 이해해 미완성 소설을 마무리하면 된다.
하지만 서재를 조사하던 그는 베러티가 남긴 자전적 원고를 발견한다.
그 안에는 아름답고 성공한 작가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끔찍한 내용이 담겨 있다.
베러티가 남편에게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고백, 자녀들에게 품었던 적대적인 감정, 그리고 딸 하퍼의 죽음과 관련된 충격적인 서술까지 등장한다.
로웬은 원고를 읽을수록 자신이 알고 있던 베러티의 모습이 거짓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베러티가 실제로는 완전히 무력한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다.
로웬이 발견한 원고가 진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원고를 쓴 사람이 소설가라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작가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일을 마치 직접 겪은 것처럼 설득력 있게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로웬은 베러티의 남편 제러미에게 점점 끌리기 시작한다.
그가 제러미를 사랑하게 될수록 베러티를 위험한 인물이라고 믿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영화의 시선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처음에는 로웬이 위험한 저택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관객은 로웬이 정말 객관적인 관찰자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는 베러티의 원고를 읽는 동시에 베러티의 직업과 공간, 가족관계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 베러티 결말 해석, 원고와 편지 중 무엇이 진실일까?
영화 후반부에서 로웬은 베러티의 원고를 제러미에게 보여준다.
제러미는 원고에 적힌 내용을 접하고 격렬하게 반응한다. 특히 딸의 죽음을 둘러싼 고백은 그가 베러티를 용서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리고 제러미가 베러티를 몰아붙이는 순간,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베러티는 실제로 말하고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상태를 속이고 있었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로웬의 의심이 옳았던 것처럼 보인다. 관객 역시 지금까지의 불길한 장면들을 하나의 설명으로 연결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이 영화가 관객을 가장 강하게 함정에 빠뜨리는 지점이다.
베러티가 자신의 상태를 속였다는 사실이 원고 속 범죄까지 진실임을 증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제러미는 베러티를 살해하고, 로웬은 죽음을 사고로 위장하는 데 협조한다.
이후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로웬은 제러미의 아이를 임신했고, 자신이 맡았던 책의 집필도 마무리한다.
이대로 이야기가 끝난다면 관객은 위험한 인물이 사라지고 남은 사람들이 행복을 되찾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또 다른 기록이 발견된다.
베러티가 남긴 편지다.
그 편지에 따르면 로웬이 발견했던 자전적 원고는 실제 범죄 고백이 아니었다. 딸을 잃은 슬픔을 견디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 반대되는 극단적인 인물을 상상하며 작성한 글이었다는 것이다.
베러티는 오히려 제러미가 그 원고를 진실이라고 오해해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주장한다.
교통사고 역시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으며, 살아남은 자신은 제러미가 두려워 상태를 속이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두 개의 상반된 이야기를 남긴다.
첫 번째 해석은 원고가 진실이라는 것이다.
베러티가 실제로 딸을 해쳤고, 마지막 편지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관점이다. 이 경우 베러티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조작하려 했던 인물이 된다.
두 번째 해석은 편지가 진실이라는 것이다.
베러티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끔찍한 허구를 만들었을 뿐이며, 제러미와 로웬은 그것을 실제 범죄로 믿어 무고한 사람을 살해했다는 관점이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해석도 있다.
원고와 편지에 모두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다.
영화는 어느 하나가 완전한 진실이라고 확인해 주지 않는다. 관객이 직접 사실과 주장을 구분하도록 남겨 두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인물은 로웬이다.
로웬은 편지를 발견한 뒤에도 제러미와의 삶을 이어가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믿었던 이야기가 틀렸을 가능성을 알게 되었음에도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 하지 않는다.
이 선택은 영화의 가장 섬뜩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로웬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면 진실보다 자신이 얻은 삶을 지키는 인물로 변한다.
그는 베러티의 책을 대신 썼고, 베러티의 남편과 함께 살며, 그 가족 안에서 베러티가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한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가장 불편한 질문은 베러티가 악인이었는가가 아니다.
로웬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선택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3. 베러티 원작 비교와 관람평, 왜 평가가 엇갈릴까?
베러티는 콜린 후버가 2018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는 원작의 핵심 구조를 유지한다. 대필 작가가 유명 작가의 저택에 머물고, 끔찍한 원고를 발견하며, 마지막에는 그 원고의 진실성을 뒤집는 편지가 등장한다.
하지만 세부 설정에는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변화는 크로퍼드 가족의 자녀 구성이다.
원작에서 베러티와 제러미에게는 세 자녀가 있다. 반면 영화에서는 딸 하퍼와 아들 크루가 쌍둥이로 등장하며, 원작에 있던 차스틴이라는 인물은 삭제됐다.
또한 원작에서 로웬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였던 몽유병 설정도 영화에서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상영시간을 줄이기 위한 선택만은 아닌 것 같다.
소설은 로웬의 내면을 비교적 오랫동안 따라갈 수 있지만, 영화는 제한된 시간 안에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영화는 복잡한 과거 설명보다 인물들 사이의 심리적 긴장과 시각적인 불안감에 더 집중한다.
특히 로웬이 베러티의 삶을 조금씩 차지하는 과정은 영화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베러티의 원고를 읽고, 베러티의 집에 머물고, 베러티의 남편에게 끌린다.
이 장면들을 단순히 금지된 로맨스로만 바라보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로웬의 행동에는 베러티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동경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작가, 아름다운 저택, 사랑받는 아내라는 이미지는 로웬이 얻지 못했던 삶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완벽해 보이는 삶의 안쪽에는 감추어진 비극이 있다.
결국 로웬은 베러티의 삶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감정에 놓인다.
해외 평론이 엇갈리는 이유도 이 작품의 장단점과 연결된다.
일부 평론에서는 앤 해서웨이와 다코타 존슨, 조시 하트넷이 만드는 긴장감과 자극적인 심리 스릴러의 매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다른 평론에서는 인물들의 행동에 개연성이 부족하고, 마지막 반전이 그동안의 이야기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두 평가 모두 이해할 여지가 있다.
베러티는 사건 하나하나를 현실적인 논리로 설명하는 추리영화라기보다, 관객이 불편한 감정과 의심 속에서 인물들을 계속 판단하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의도적인 모호함이 어떤 관객에게는 뛰어난 심리전으로, 다른 관객에게는 설명되지 않은 허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치는 글이 곧 증거처럼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다.
누군가가 적어 놓은 문장은 사실처럼 보이기 쉽다. 특히 그 글에 구체적인 사건과 감정이 적혀 있다면 우리는 작성자의 실제 경험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하지만 소설가에게 글은 진실을 기록하는 도구인 동시에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을 만드는 도구다.
베러티는 이 두 가지 기능을 교묘하게 겹쳐 놓는다.
그리고 관객에게 마지막까지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원고를 믿으면 베러티는 괴물이 되고, 편지를 믿으면 제러미와 로웬이 괴물이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러티는 결말을 알고 나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영화다.
누가 거짓말했는지보다, 내가 왜 그 사람의 말을 더 쉽게 믿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베러티의 진짜 반전은 범인의 정체가 아니라, 진실을 판단한다고 믿었던 관객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